-근대 철학은 세계를 정신과 몸, 주체와 대상, 본질과 현상 등 대립적으로 구분해서 파악하려 했으며, 나아가 전자를 우위에 둠으로써 후자를 억압하고 은폐해왔다.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에 근거한 인식을 비판하고, 모든 실재가 분리되기 이전인 근원적인 상태를 탐구하는 것을 자신의 철학적 지향으로 삼음으로써 근대 철학의 틀을 전복시킨다. 그는 회화와 언어에서 철학이 나아가야 할 지점을 발견한다. 그에 따르면 개념적 언어가 아닌 침묵으로 표현되는 회화와 언어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의미를 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기존의 이분법적 경계가 무화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메를로 퐁티의 사유는 의식 일변도였던 근대 철학의 근간을 뒤흔든 해체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 오늘날 장르 통합적인 현대 예술, 그리고 규범과 가치들이 혼란에 빠진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 Maurice Merleau-Ponty (1908~1961)
프랑스의 로슈포르쉬르메르에서 태어났다. 19030년에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1831년 철학교수 자격을 얻었다. 2차 세계대전 전에는 국립고등학교와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가, 전쟁 동안 육군 장교로 복무 했다. 1945년에는 리옹 대학 철학교수로 임명되었고, 1949년 파리 소르본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1952년에 콜레주 드 프랑스의 철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1945년부터 1952년까지 장 폴 사르트르와 함께 <현대>지의 객원 편집자로 일했다.
메를로 퐁티는 고등사범학교 재학 시절 사릍르를 만나 현상학자로서의 길을 함께 걸었으나 나중에는 정치적 적대자로 돌아서게 된다. 그는 2차 세계대전 후 사르트르와 함께 좌익 민주혁명연합에 입당해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고, 1947년 소련 공산주의를 세련되게 옹호한 마르크스주의 논문집 <휴머니즘과 테러>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근거한 보편성을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에 회의를 느껴 북한을 옹호한 사르트르와 1952년 결별했다.
 메를로 퐁티는 1930년대 말부터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신체 행위와 지각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타자에 관한 후설의 인식론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철학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철학을 가르치다가 1961년 53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메를로 퐁티의 사상은 존재론, 인식론, 언어 철학, 예술 철학, 정치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그러나 메를로 퐁티 사상의 핵심은 무엇보다 몸 현상학 또는 몸철학이라 부를 수 있는 그의 인식로이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구조주의와 해체론 등 현대 철학의 주요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구적 업적으로 평가 받는다.
 저서로 <행동의 구조>,<지각의 현상학>,<변증법의 모험>,<의미와 무의미>,<기호들> 등이 있으며, 사후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눈과 정신> 등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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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page 6

만일 메를로 퐁티가 좀더 오래 살아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다면, 그는 현대 프랑스 철학사에서 지금보다 훨씬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사상에 비판적이든 호의적이든 현대 프랑스의 많은 철학자들이 메를로 퐁티의 철학에서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의 철학을 일컬어 '모호성의 철학'-메를로 퐁티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 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이보다 더 진솔한 철학은 없을 것이다. 메를로 퐁티 이전의 프랑스 철학은, 인간은 명석하게 판명이 가능한 의식을 가진 인식 주체이기 때문에 목적론적 체계 속에서 세계를 통일적으로 인식할 수 있고, 세계에는 보편적이면서 불변하는 진리가 존재하며, 이성에 의해 산출된 지식은 세계에 대한 완전하고 확정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등의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반해 메를로 퐁티는 인간을 순수하고 사유하는 정신과, 이러한 정신을 지탱해주는 물질적인 육제의 결합체, 즉 분리되어 있는 정신과 육체의 결합체로 보는 시각에 반대하고, 우리가 정확하고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모의 실존적 상황뿐이라고 주장했다. 즉 분명한 것은 결코 투명하지 않은 세계에 고유한 몸이 존재하고, 몸이 그러한 세계로 향한다느 사실뿐이기 때문에 몸 앞에 주어진 실존적 사태는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사유로는 포착될 수 없고, 불투명하며, 모호할 수밖에 없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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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 퐁티는 인간의 의식은 감각적으로 실존하는 몸에서 체화(體化)된 것이므로 의식과 몸을 둘로 나눌 수 없고, 모든 인식과 행위는 인가느이 이성이 아니라 바로 각자의 몸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말해 인간은 사고하는 주체인 코기토cogito로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몸으로서 존재하고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세상의 의미는 몸의 체험을 통하기 때문에 늘 개방적이고 발생적이라는, 해석학적인 의미의 모호성이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메를로 퐁티의 철학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메를로 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을 통해, 이전의 관념론적 철학과 달리 지각된 세계의 현상에 주목하고, '지각'은 정신적인 주체가 아니라 몸과 대상과의 상호작용이므로 '보는 행위'와 '사유하는 행위'는 서로 분리된 활동이 아님을 주장했다. 이처럼 인간의 몸은 '보는 동시에 보이는 구조'를 지닌 수수께끼와 같은 유일한 존재, 즉 보는 주체인 동시에 보이는 대상이므로 인간은 대상을 객관화하는 정신적인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눈과 정신>,<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지각된 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는 외관'과 '보이지 않는 깊이'를 지닌 양면적인 존재에'살'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인간의 몸뿐만 아니라 사물도 이와같은 '살'의 양면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도 설명했다. 결국 세계는 하나의 '살'로 이루어진 실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메를로 퐁티에게 있어서 '현상'이란 보이는 외관과 보이지 않는깊이를 모두 잠재적 지평으로 지닌 리얼리티다. 그는 현상과 본질은 나눌 수 없으며, '지각'이란 현상적인 몸이 피부를 열고 대상으로 영역을 확장함에 따라 대상이 몸의 '살'로 변하는 존재론적 조화이기 때문에, 사물을 '본다는 것'은 보는 것인 동시에 사물에 의해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메를로 퐁티는 회화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했다. 그에게 있어 회화란 가시계의 거울도 아니고, 순수한 자아의 절대적인 주관성으로의 귀환이나 무의식적 환상도 아니다. 단지 모든거의 근원인 세계에서 '살'이라는 존재가 드러나는 차원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그는 회화에서 '몸과 정신', '주체와 대상', '나타나는 것과 존재하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느 것' 등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점을 포착하고, 이와같은 회화의 표현적 특징이 언어의 표현적 특징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밝혀냄으로써 철학과 예술의 유사성을 주장했다. 반성이전의 영역인 지각 체험을 통해 주객이 분리되기 전의 불투명한 세계에 침묵으로 접근한 뒤 존재의 신비와 깊이를 개념 없이 펼쳐내는 예술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자신의 현상학적 태도의 근거를 찾은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메를로 퐁티는 철학이 탐구하는 합리성의 모델을 예술에서 찾았으며, 인간의 몸과 세계가 교차하면서 얽혀 있는 '살'의 구조에서 우리의 지각과 해석, 그리고 이해의 가능성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