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밑 줄기인 리좀은 뿌리나 곁뿌리와 전적으로 다르다. 구근(球根, bulbs)이나 덩이줄기(tubers)가 리좀이다. 뿌리나 곁뿌리를 가진 식물들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보면 리좀 형태를 하고 있을 수 있다. 두더쥐 굴 같은 것도 그것이 가진 서식, 식량조달, 이동, 은신, 출몰하는 기능에서 보자면 리좀이다. 리좀 그 자체는 매우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 감자나 개밀(couchgrass)에서 잡초에 이르기까지 리좀은 가장 좋은 것에서 가장 나쁜 것까지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리좀의 특성을 보여주는 여섯 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원리1, 원리2> 연결과 이질성의 원리(principles of connection and heterogenity)
<원리3> 다양체의 원리(principle of multiplicity)
<원리4> 의미작용 없는 단절의 원리(principle of asignifying rupture)
<원리5, 원리6> 지도 제작과 전사(轉寫)의 원리 (principles of cartography and decalcomania)
<원리 1, 원리 2> 연결과 이질성의 원리
"리좀 체계 내의 어떤 점이든 다른 점과 연결될 수 있고 연결되어야 한다." 즉 리좀은 구조상 위계적이지 않다. 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나중이라고 할 수도 없고, 어떤 점은 다른 어떤 점과만 연결되어야 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모든 점들은 연결되어 있고 또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연결은 이질적인 것들 간의 연결이다.
"리좀은 기호학적 연결 고리들, 권력 조직들, 예술들·학문들·사회적 투쟁들과 관련된 상황들 사이를 끊임없이 연결시킨다. 기호학적 연결 고리는 덩이줄기와도 같아서, 언어학적인 행위들은 물론이고, 지각, 모방, 몸짓, 인지적 행위들 같은 매우 다양한 행위들을 한 덩어리로 모은다."
<원리 3> 다양체의 원리
"다양체는 주체도 객체도 갖지 않는다. 다양체는 결정들(determinations), 크기들, 그리고 차원들만을 가질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차원은 그 단계가 높아지기 위해 다양체의 본성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나의 모임(assemblage)은 정확히, 그 연결이 증가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본성상의 변화를 겪는 다양체의 차원들의 이러한 성장이다. 리좀에는 구조, 나무, 뿌리 속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점들이나 위치들(positions)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선들만이 존재한다."
꼭두각시 인형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여기에서 우리가 리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꼭두각시 인형의 팔다리와 그 팔다리를 조종하는 나무틀 사이를 연결하는 "줄들"이다. 혹자는 이 줄들의 다양체를 조종하는 것이 그것을 조종하는 사람의 의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조종자 역시 자신의 팔과 다리가 신경 섬유들의 다양체에 매여있다. 조종자 역시 이 신경 섬유들의 다양체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그리고 이 신경 섬유들은 또다시 뇌의 회백질과 격자를 거쳐 미분화된 것들 속으로 떨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수직의 위계를 세우는 과정이 아니다. 이것은 수직의 위계를 수평의 평평한 판에 펼쳐 놓는 일이다. "책의 이상은 이러한 종류의 바깥의 판 위에, 단 한 페이지 위에, 단 한 장 위에 모든 것을, 즉 체험된 사건들, 역사적 결정들, 개념들, 개인들, 집단들, 사회적 구성체들을 펼쳐 놓는 것이다."
<원리 4> 의미작용 없는 단절의 원리
우리는 개미떼를 근절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리좀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좀은 어느 한 지점에서 끊어지거나 산산이 부서지더라도 예전의 선들 중의 하나나 또는 새로운 선들 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9) 모든 리좀은 층을 만들고, 영토를 만들고, 의미작용을 수행하는 '나누는 선들'(lines of segmentarity)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또한 끊임없이 달아나는 탈영토화의 선들도 포함하고 있다. 나누는 선들이 '달아나는 어떤 선'(a line of flight)에로 파열할 때마다 리좀 안에는 단절(rupture)이 있게 된다. 하지만 달아나는 선은 리좀의 일부이다.
<원리 5, 원리 6> 지도 제작과 전사의 원리
리좀은 본뜸(tracing)이 아니라 지도(map)이다. 어떤 그림 위에 반투명 용지(tracing paper)를 얹고 그 그림을 그대로 본뜨는 것에서 보는 것처럼, 본뜸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것을 재현하고, 이미 완성된 채로 주어진 어떤 선을 따르는 것이다. 그에 반해 지도는 스스로의 내부에 갇혀 있는 무의식을 복제(reproduce)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해 낸다. 지도를 본뜸과 구별해주는 것은, 지도는 전적으로 실재와의 접촉 실험에로 향해 있다는 점이다. 구조적 모델이나 생성 모델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발생 축'이나 '심층구조'와 같은 관념들이 이러한 본뜸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본뜸이 능력(competence)의 문제인데 반해 지도는 수행(performance)의 문제이다. 지도를 갖고 길을 찾아가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우리는 지도를 찢어서 다닐 수도 있고, 거꾸로 뒤집어서 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자기에게 필요한 새로운 정보나 기호를 그 위에 덧붙여 기록해 넣을 수도 있다. 여기서 지도는 실제 세계와 계속해서 맞닿는다. 지도는 그 자체가 리좀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다양한 입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리좀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지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와 맞닿아 있다. 지도는 벽에 그려질 수도 있고, 예술 작품처럼 구상될 수도 있고, 정치적 행동이나 명상의 일환으로 구성될 수도 있다.
"본뜸은 지도를 하나의 이미지로 번역해 버린다. 본뜸은 리좀을 뿌리나 곁뿌리로 변형시킨다. 본뜸은 자신의 의미화와 주체화의 축을 따라 다양체들을 조직하고, 고정시키고, 중성화한다. 리좀이 틀어 막히고 나무처럼 되면, 모든 것은 끝이고, 더 이상 어떠한 욕망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욕망은 언제나 리좀에 의해서만 꿈틀거리고 생겨나기 때문이다. 욕망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내적 반향에 의해 욕망은 넘어지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반면에 리좀은 외적이고 생산적인 성장에 의해서 욕망에 따라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