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자기도 모르는 '자기'의 존재

Posted 2009. 3. 3. 16:10

인간의 마음에 있는 대조적인 두 존재에 주목한 융

◆마음의 정체를 찾는 융심리학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였던 칼융은 연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람의 마음의 깊은 메커니즘'을 아주 명쾌하게 설명해 준 최초의 심리학자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이룩한 심층심리학을 융심리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결과 융심리학은 사람이 '자기 마음의 정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자기 마음의 진솔한 소원'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내게 있어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자기통찰'이나 '자가'에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무릇 사람이란 자기가 자기 마음을 '완전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자기 마음을 자기가 알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단말인가?
   물론 자지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일, 자지가 동경하고 있는 대상, 자기가 좋아 함과 싫어 함이나, 자기에게 있어서 옳다고 믿고 있는 것등 이와 같은 의식된 '자기 마음의 지각요소'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이러한 것들만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본인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 즉 '의식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 것에 반해서 본인에게도 분명하게 의식되어 있지 않은 부분, 즉 '무의식의 부분'이 있다. 이렇듯 융은 마음의 본체를 의식 무의식의 대조적인 존재에 관련지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혹자는 '자기 마음에 자기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런 일이란 있을 수도 없으며, 이해가 되지도 않는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본인에게도 의식되어 있지 않은 마음의 부분'은 우리가 일생생활을 통해서 자주 그 존재에 대해 깨닫게 된다는 것을 체험했을 것이다.
   예컨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합리화 내지는 변명하기 위해 말할때 '무의식 중에 생각지도 않게~해 버렸다'라든지 '무심결에 ~ 그렇게 되었다'라고 말했던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또는 '평소에 나는 독서 같은 것은 좋아 하지 않는 편이어서 책게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재미가 있어 나도 모르게 철야독서를 해 버리고 말았다' 등과 같이 사람마다 이와 비슷한 체험은 얼마든지 많이 있었을 것이다.

◆평소 의식하고 있지 않은 무의식의 자기
   앞에서 든 예에서 왜 '나도 모르게 철야독서에 전념하였다'는 것일까? 그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무엇보다 우선'이 책이 매우 재미있는 책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정말로 마음의 밑바닥으로부터독서를 싫어 하는 사람이었다면 제 아무리 재미있는 책이라 할지라도 '독서'란 고통스러울 뿐이며. 결코 기쁨이나 만족 같은 것은 느낄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기실은 본래부터 ' 독서를 좋아 하는 또 하나의 자기'라고 하는 요소가 깊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읽으려고 했던 책이 때마침 마음속에 깊이 숨어있던 독서를 좋아하는 심적요소에 딱 들어 맞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지금까지 숨어있던 '무의식'의 독서애호의 심적 요소는 그 책에 자극되어 뭉게구름처럼 왕성하게 피어나서 밤을 세워 독서 삼매경에 빠질 숭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평소에 의식하고 있지 않은 무의식의 자기'의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 , 사람들은 흔히 '내가 이렇게 독서에 열심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고 놀라는 의외의 감회에 젖어 들기도 한다. 이렇듯 사람들은 생각해 보면 자기에 관한 것인데도 마치 '타인의 행동'인 것처럼 생각해 버리는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이다.
   요컨대, '무의식의 자기'란 '의식하고 있는 자기의 마음'에서 볼 때 마치 '남처럼 독립되어 있는 존재'로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 가운데는 이처럼 자기가 알고 있지 않은 독립된 존재같은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