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라 p48-50

 최근에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새삼스레 깨달은 것이 있다. 창조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보고, 얼마나 많이 듣고, 얼마나 많이 읽어느냐 하는 것이다. 창조력의 원천이 감성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감성의 토대는 자기 내부에 있는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다. 그렇다면 축적의 절대량을 늘리면 그 사람의 수용 능력은 저절로 넓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가령 두 사람이 영화에 관해서 대화를 나눈다고 하자.
  "그 영화 봤어?"
  "아니, 아직 안 봤어."
 영화를 봤느냐는 질문에 아직 보지 않았다고 대답하면 그 대화는 더 이상 깊어질 수 없다. 세상 사는 이야기라면 또 몰라도 구태여 영화이야기를 꺼낸 것을 보면, 상대는 그 영화를 예로 들어 창조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도중에 대화를 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상에는 반드시 읽어두어야 할 책이 있다. 나중에 되돌아 보았을 때그해를 상징하거나 시대의 한 단면으로 작용하는 책들이 일년에 몇 권씩 있는 것이다. 만약 일년에 두세 권밖에 읽지 않았는데, 모두 그런 책들이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탁월한 선택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시류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보통 사람은 어느 책이 그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선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질보다 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어쨋든 많은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개중에는 시시하거나 재미없다고 느끼는 책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도 하나의 축적이다. 이것저것 많은 것을 섭렵하다보면 자기 내부에 있는 필터를 통과하는 사이에 선택안이 생기지 않을까?
 감성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사방팔방 안테나를 세운 뒤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읽어야 한다. 또 직접 가고, 직접 경험하고, 직접 느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자기 내부에 있는 지식과 경험의 양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큰소리칠 만한 처지는 못 된다. 작곡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는 주위의 정보를 완전히 차단하기 때문에 내부로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더구나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되도록이면 직접 내눈으로 많이 보아두려고 노력한다. 가령 베이징을 무대로 영화음악을 만들 때 지식으로써 얻은 베이징과 내 몸으로 생생하게 체험한 베이징은 전혀 다르다. 실제로 돌아다녀 보니 당치도 않게 넓고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불평이 튀어나왔다.
  "자금성은 왜 저렇게 무지막지 크지?"
  "베이징의 봄은 황사 때문에 엉망이군."
 이런 직접적인 경험이 있으면 이미지의 깊이가 달라진다.
 되도록 많은 것을 경험해서 수용 능력을 넓힐 것! 이것이 감성을 연마하는 데 필요한 척 번째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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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다녀온 후 후배들에게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것을 경험하라
그리고 후에 너의 진정으로 하고싶은 작업을 찾을때는 눈으로 본 것에서 손이가지 않는다.
너가 경험한 것중에 너에게 맞고 필요한 것들이 모여 너의 작업이 되는것이다.
하지만 너가 너의 작업을 찾을때 50가지를 경험한 사람과 5가지를 경험한사람의 작업을 비교해본다면
당연히 50가지 다양한 작업을 다양한 시도를 해본사람의 작업이 더 깊고 주제와 어울리고 능숙하게 다루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작업과 관련해서 생각한 것들이 히사이시 조의 음악관 창작관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할 줄 몰랐다.
몇가지 더 좋은 부분이 있다. 시간이 날때 더 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