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릴 때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때로는 웅장하게, 때로는 신비롭게, 때로는 사랑스럽게 영화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그 음악. 세계적인 영화음악의 거장 히사이시 조가 자신의 음악세계를 책 한 권에 풀어놨다.


영화음악의 ‘마이더스의 손’이라 불리는 히사이시 조. 하야오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영화 ‘웰컴 투 동막골’과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음악감독을 맡아 국내에서도 친숙한 이름이다. 박광현 감독이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들으며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음악을 맡아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는 건 잘 알려진 일화다.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에 대한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이다. ‘거장’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여전히 그는 음악작업을 ‘진검승부’라 표현한다. 거장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작곡가로서 음악을 대하는 진지함과 프로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지금까지 수 차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음악을 만들었지만 한 번이라도 음악이 좋지 않으면 다음에는 나에게 의뢰를 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항상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일을 하고 있고, 매번 진검승부이다. 힘들기도 하지만 OK사인이 떨어졌을 때의 기쁨은 이 모든 괴로움을 견디게 해 준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깊은 울림을 전하는 까닭은 이렇듯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진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철저한 자기관리, 감성과 직관을 키우기 위한 배움의 자세는 ‘프로’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오십이 넘은 나이지만 그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곡가다. 첫 번째 청중으로서의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음악은 절대 내놓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 이를 위해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늘 자신을 한계상황까지 몰아넣는다. 고통과 인내의 시간, 좋은 음악을 낳기 위한 산고(産苦)는 필연이다. 히사이시 조가 작곡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다름 아닌 계속 곡을 쓰는 것. 그에게 프로란 자신의 역량을 유지·발전시키며 끊임없이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기타노 다케시·박광현 감독과의 일화를 비롯해 직접 영화감독으로 일하며 배우고 겪은 교훈 등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구석구석 숨어있다.
창작을 목표로 하는 이들에게는 물론 ‘프로’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인생 지침서로도 좋다. 200쪽. 9500원. 프리미엄 이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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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곧 나 자신이다. (프롤로그)

나는 작곡가다. 외국에서는 작곡가를 '컴포저'라고 한다. 음악을 구성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렇다. 내가 하는 일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작곡가가 아니라 컴포저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음악을 만들 때의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감독으로부터 이번에 이런 영화를 만드는 데,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그러면 일단 시나리오를 읽어 본다. 미야자키 하야오감독의 작품처럼 애니메이션인 경우에는 그림 콘티를 본다. 그런다음 감독의 머릿공에 있는 이미지나 희망상항 등을 듣는다. 그리고 주제는 무엇인지, 어떤 악기를 사용해서 어떤 곡조로 할 것인지를 전체적으로 구상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장면에 어느 곡을 몇 분 몇 초로 넣을 것인지, 몇 곡을 만들것인지 협의한 다음 실제로 고을 완성해서 녹음을 한 후, 믹스다운 을 한다.
 여기까지가 내 일이다. 즉, 영화에 들어가는 모든음악을 구성해야한다. 하지만 내 멋대로 곡을 만들 수는 없다. 영화의 세계관과 어울려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감독이다. 감독이'이 음악은 아니다.'라고 말하면 내가 아무리 좋다고 주장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이미지나 영상에 너무 집착해서도 안 된다. 감독의 이미지 안에서 무난한 작품을 만들면 작곡가로서 아무런 재미도 없지 않은가! 대부분의 감독은 풍부한 창조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모든 창조 에너지를 투입해서 영화를 만든다. 따라서 영화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그에 걸맞은 풍부한 창조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감독은 항상 자기 이미지의 껍질을 깨뜨려줄 신선한 음악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음악을 만들 때의 일이다. 메인 테마곡을 정할 때, 나는 그의 애니메이션에 어울리는 음악을 한 곡 준비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작품의 세계관과 다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느끼면서도 내가 밀고 싶은 음악을 한 곡 더 만들었다. 그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창조력을 발휘해서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예정조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나도 매번 진검승부를 해야만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모든감각을 총동원하고 나 자신을 한계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래야만 일반적인 범주를 초월한 작품이 태어나는 것이다.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힘들지만. 상상을 초월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이 바로 일의 재미가 아니고 무엇이랴.
 히'창조'의 기본은 '감성'이라고 한다. 창조와 감성이란 두 단어를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말을 매개로 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작곡가로서 일하는 나의 방법과 사고방식, 시점, 무의식 안에 잠들어 있는 감각 등을 말로 표현하면 투명하게 보이지 않을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나는 지금 작곡이외에도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다.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콘서트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한다. 또 이벤트의 프로듀서로 일하기도 하고, 영화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음악 이외에 나의 울타리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많은 일을 통해서 사회와 관계를 맺는 사이에 내가 하는 일을 말로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창조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똑같지 않을까?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가장 좋은 결론이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것, 좋은 의미에서 예상을 뒤엎을 만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위해 평소부터 감각을 연마하고 센스를 키우는 것, 이러한 것들은 비단 음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리라.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하루하루 악전고투하는 가운데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 전함으로써 사람들이 '음악' 이란 것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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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감성과 마주하라

"창조적인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성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과연 '감성' 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막연한 이미지만으로 감성이란 말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듯하다. 정확한 뜻도 모르면서 어쨌든 중요하다고 여기며 제단 위에 올려놓고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감성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감성이라는 말로 포장된 것을 냉정하게 분석해 보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각적인 것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그 사람의 뼛속 깊이 새겨져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작곡가로서 늘 새로운 발상과 함께 내 힘으로 창작하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곡을 만들 때는 과거의 경험과 지식, 지금까지 들어 온 음악,  작곡가로서 체득한 방법, 사고방식 등 모든 것이 총동원된다. 여러 가지 형태로 내 안에 축적된 것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클래식을 배우지 않았다면, 또는 미니멀 뮤직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내 음악 스타일은 지금과 달랐으리라.
 "창작은 감성이다."
이렇게 단언하는 편이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폼은 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독자적인 감각만으로 제로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나는 막연한 감성만으로 창작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곡을 하기 위해서는 논리적 사고와 감각적 직감이 모두 필요하다. 논리적 사고의 근간이 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지식이나 체험 등의 축적이다.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체험해서 내 피와 살을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 논리성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사실 감성의 95퍼센트는 이것이 아닐까?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일정 수준에 도달하는 작품은 언제라도 만들 수 있다. 기분이 내키느냐 내키지 않느냐에 관계없이 정상적으로 일을 하면 나름대로의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창작을 하고, 작곡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나머지 5퍼센트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창작하는 사람의 '센스'와 '감각적 번뜩임'이다. 창작에 독창성을 부여하는 것, 그 사람이 아니면 맛을 낼 수 없는 향신료 같은 것. 이것이야말로 '창조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창작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직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판단은 직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뛰어난 직감이 얼마나 작품을 멋지게 만들 수 있느냐, 얼마나 창조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 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깊숙이 파고들면 사실 직감을 연마하는 것은 과거의 체험이다.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여기부터 여기까지는 논리적 사고이고 여기부터는 독자적 감각이라고 구분할 수 있는 것이아니라, 내부에 있는 것을 전부 뭉뚱그린 카오스 상태 안에서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다. 논리나 이성이 없으면 사람들이 이해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없지만, 모든 것을 머리로만 정리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작품을 만들 수 없다.
 질서정연하게 생각할 수 없는 곳에서 괴로워하고 발버둥치며 필사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그런 다음에 '어떻게든 만들어보자''이렇게 해보자'라는 작위적인 생각이 의식에서 떨어져나가면, 그때야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작품이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앞에서 논리적 사고와 감각적 직감의 비율을 95퍼센트 대 5퍼센트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진다. 나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많은 것을 보거나 들어서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고 통감할 때는 그쪽의 비중이 늘어나서 ' 축적이 99퍼센트를 차지한다'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작곡에 들어가서 고통과 괴로움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는 ' 축적만으로 곡을 만들 수 있다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을 텐데. 역시 중요한것은 직감이야' 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축적과 직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 순간의 핵심을 정확히 포착하면,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할 수있는 것이다.
 그 핵심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다. 문제는 그 순간의 감각과 직감을 어떻게 잡느냐 하는 것이다. 창조적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문제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리라. 나 또한 그로 인해 매일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있다.

(좋아하는 부분을 적고 있습니다.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서 좋은 글이 많아 담습니다. 시간날때 좀더 적고싶습니다..)